제주 조천 낙선동4.3성, 돌담에 깃든 생존과 기억의 시간

늦은 오후,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제주시 조천읍의 낙선동4.3성을 찾았습니다. 길가에는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멀리서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낮은 언덕 위로 검은 돌담이 이어지며, 한눈에 보기에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이곳은 제주4.3 당시 피난민들이 몸을 숨기기 위해 쌓은 돌성으로, 단단한 현무암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현장을 둘러보는 동안 주변의 고요함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역사의 상처가 깃든 장소이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바람이 돌 사이를 스쳐 지나가며 내는 소리가 오래된 기억을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1. 조천읍 들판을 따라 이어지는 접근로

 

낙선동4.3성은 조천읍 낙선리 마을 외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낙선동 4.3성 국가유산’을 입력하면 마을길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길로 안내됩니다. 입구 쪽에는 작은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차량은 인근 밭 옆 공터에 세워둘 수 있습니다. 걸어서 5분 정도 오르면 돌담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옵니다. 길가에는 감귤나무가 줄지어 있어 귤 향이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평일 낮이라 사람의 발길이 드물어 고요했으며, 하늘과 들판이 맞닿은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습니다. 길은 흙길이지만 평탄하여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기 좋았습니다. 성의 입구에 다다르면 ‘4.3성 유적지’라는 작은 표지석이 눈에 띕니다.

 

 

2. 돌과 시간으로 쌓인 성의 형태

 

낙선동4.3성은 거대한 성곽이라기보다 사람의 허리 높이 정도의 돌담이 둥글게 둘러져 있는 구조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돌 하나하나가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단단히 맞물려 있습니다. 돌의 표면은 세월에 닳아 매끄럽고, 이끼가 얇게 덮여 있습니다. 곳곳에는 바람에 깎인 흔적이 남아 있지만, 형태는 여전히 또렷했습니다. 내부에는 풀이 무성하지만, 그 위로 돌계단의 일부가 남아 있어 과거의 통로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는 당시 사용하던 움막터와 비슷한 흔적이 남아 있고, 안내문에는 당시 이 돌성이 피난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돌의 차가운 질감이 그 시절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전해주었습니다.

 

 

3. 역사적 맥락이 깃든 장소의 의미

 

낙선동4.3성은 제주4.3사건 중 가장 비극적인 시기에 조천읍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쌓은 피난성으로, 돌 하나하나에 당시의 긴박한 마음이 스며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군의 수색을 피하기 위해 산자락에 돌담을 두르고 그 안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안내판에는 이곳에서 살던 가족들이 겪은 사연이 짧게 기록되어 있었는데, 글자를 읽는 동안 숨이 막히듯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아픔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려던 연대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돌담의 연결선이 마을을 감싸듯 이어진 모습이 그 상징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지금은 바람이 드나드는 평화로운 들판이지만, 그 아래에는 수많은 기억이 묻혀 있습니다.

 

 

4. 조용히 머무를 수 있는 관람 환경

 

이곳은 상업적인 시설 없이 조용히 보존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입구 근처에는 나무 안내문과 간단한 유적 지도가 있습니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고, 주변에는 벤치 두어 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기억하고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울타리 대신 돌담과 풀숲이 자연스럽게 경계를 이루고 있어, 유적과 풍경이 한 몸처럼 어우러져 있습니다. 방문객 대부분은 잠시 머물다 조용히 돌아가는 편이었고,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휴대폰 전파가 약해 오히려 외부와의 단절이 이 공간의 고요함을 더했습니다. 인위적인 조명 없이도 석양빛이 돌에 스며들며 자연스러운 빛을 만들었습니다.

 

 

5. 주변의 역사적 공간과 연계한 탐방

 

낙선동4.3성을 둘러본 뒤에는 차로 10분 거리의 ‘북촌리 4.3평화공원’을 방문하면 좋습니다. 그곳에는 당시의 기록과 증언, 전시 자료가 함께 보존되어 있어 유적의 맥락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 ‘함덕해수욕장’으로 이동해 바다를 바라보면, 같은 바람이지만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길 중간에는 ‘조천만세동산’이 있어 독립운동 관련 기념비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북촌 너븐숭이’ 유적지는 같은 시대의 비극을 기록한 공간으로, 낙선동4.3성과 연결되는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역사와 자연,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이 이어진 하루 코스로 충분히 의미 있었습니다.

 

 

6. 관람 팁과 조용히 둘러보는 방법

 

낙선동4.3성은 날씨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집니다. 흐린 날에는 돌의 색이 어두워져 더욱 엄숙한 느낌이 나고, 맑은 날에는 하늘과 대비되어 성의 윤곽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흙길이므로 운동화를 신는 것이 좋고, 여름철에는 모자와 생수를 준비해야 합니다. 입구 주변에는 쓰레기통이 없으니 개인이 가져간 것은 반드시 되가져오는 것이 원칙입니다.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돌 위에 올라서지 않고, 외곽에서 바라보는 것이 예의입니다. 조용히 머물며 잠시 눈을 감으면, 돌담 너머로 지나간 시간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그 순간만큼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아직도 살아 있는 기억의 장소처럼 다가왔습니다.

 

 

마무리

 

낙선동4.3성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묵직한 울림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전해졌습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역사를 눈으로 보는 대신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돌담 사이로 스며든 석양빛이 이 장소의 고요함을 더욱 강조했고, 바람 속에서 누군가의 숨결이 아직 머무는 듯했습니다. 돌아서는 길, 발자국 소리가 낯설게 들릴 만큼 정적이 깊었습니다. 다시 제주의 일상 속으로 돌아가면서도, 그 평온함 이면의 역사를 오래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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